퀸 노래 잘 모르는데 영화 봐도 잼있을까? 


막상 영화를 보면 "이 노래도 퀸 노래였어?" 라며 놀라게 될 것이다. 세상과 단절하고 살지 않은 이상 광고음악으로 어마어마하게 접했기때문에 영화에서 모르는 노래 찾는게 더 빠르다. 모르는 줄 알았는데 죄다 아는 노래였네~



프레디 머큐리 



영화를 보면서 '치아가 왜 저래? 너무 과장한거 아냐?' 라고 생각했지만 고증을 완벽하게 한 것이었다. 사실 퀸 노래만 알았지 얼굴은 잘 몰랐는데 이가 상당히 뻐드렁니구나.. 



본명은 파로크 불사라(Pharokh Balsar)이며 아프리카의 탄자니아 동쪽 해안에 위치한 잔지바르 섬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님은 8세기에 무슬림에 쫓겨 인도로 피신해 정착하다가 영국으로 이민을 왔다. 

프레디는 이란, 인도 계통의 고대 종교인 조로아스터교도의 후손인 '파르시'이다. 파르시는 페르시아 사람이란 뜻으로 조로아스터교를 믿는 페르시아 난민의 후손들이다. 

인도계 파르시인인 프레디는 언론에서 공격의 대상이었다. 엘튼 존은 '만약 그가 영국에서 태어난 유럽인이었다면 지금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았을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퀸 초기에는 글램 락의 영향을 받아 긴머리, 검은 눈화장, 몸에 딱 붙는 타이즈를 주로 입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프레디는 뻐드렁니를 가리기 위해 콧수염을 기르고 머리를 짧게 자른다. 더이상 타이즈를 입지않고 가죽자켓을 입으며 마초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에서 처럼 프레디는 고양이 덕후였다. 주로 길고양이를 거두어 키웠다. 수많은 고양이 중에서도 1987년에 데려온 삼색 고양이 딜라일라를 가장 사랑했다. 첫 솔로 앨범인 Mr. Bad Guy를 고양이에게 바친다고 말하기도 했다. 



프레디의 생전 마지막 퀸 정규 앨범인 Innuendo의 'the show must go on'에서 음이 너무 높아서 브라이언 메이는 프레디가 부를 수 있을지 걱정했지만 한 방에 녹음을 해냈다. 

프레디는 에이즈에 걸린 것을 비밀로 했다. 그는 죽기 전 1년간 언룬에 절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의 애인인 짐 허튼이 임종까지 곁에서 지켰다. 당시 짐 허튼도 에이즈에 걸렸었다. 1991년 11월 23일 에이즈 감염을 공식적으로 인정했고 바로 다음 날 숨을 거둔다. 

독실한 조로아스터교 신자였던 그의 부모님은 프레디를 조장하려고 했다. 조장은 독수리나 새들이 시체를 먹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인들의 극심한 반대로 화장되었다. 

 


브라이언 메이 



영국 공과대학 최고의 명문인 임페리얼 칼라지 런던에 진학해 천체물리학을 전공했다. 석사를 따고 퀸 활동을 하다가 2007년 천체물리학 박사 학위를 땄다. 2008년부터 2013년까지 제4대 리버풀 존 무어스 대학의 총장을 지냈다. 

또한 퀸 하면 떠올리는 가장 유명한 노래인 'We will rock you'를 작곡했다. 



브라이언의 기타는 10대때 아버지와 함께 100년된 벽난로의 목재, 자전거 스프링 등을 이용해 직접 만든 것이다. 대게 기타는 21플랫, 22플랫인데 이 기타는 24플랫으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이 기타는 오묘하고 독특한 소리를 낸다. 그는 플라스틱 피크 대신에 영국의 6펜스 동전을 사용하며 현재까지 50년 넘게 사용 중이다. 

2005년 12월 6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대영제국 훈장 3등급을 받았다. 

이 영화에서 그는 음악감독을 맡았다. 



로저 테일러 



멤버들 중에서 가장 꽃미남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결혼을 3번 했다. 'Radio Ga Ga', 'A king of magic', 'I'm in love with my car'를 작곡했으며 코러스 나 때로는 리드보컬로 참여했다. 프레디 머큐리가 사망하고 나서 브라이언 메이와 함께 지금도 투어를 하고 있다.  


존 디콘 



전자공학을 전공하여 음향기계가 고장나면 직접 고쳐서 사용하기도 했고 밴드에서 만내였다.  

'Another one bites the dust', 'under pressure', 'Spread your wings', 'I want to break free' 등을 작곡했다. 그의 뛰어난 실력이 프레디 때문에 묻혔다는 말도 있다. 뛰어난 실력을 가졌지만 조용한 성격때문에 무대 전면에 나서지 않고 묵묵하게 연주하는 타입이다. 멤버 중에서 노래를 하지 않는 유일한 멤버이다. 그는 1997년 은퇴하여 가족들과 조용히 살고있다. 





그룹명 퀸과 퀸의 로고는 영국 일링 예술대학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한 프레디가 디자인했다. 로고에 들어가는 동물은 멤버들의 생일 별자리를 상징한다. 멤버들은 그룹명을 퀸으로 하는걸 반대했지만 프레디의 고집을 꺽지 못했다. 

퀸의 레코딩은 상당히 실험적으로 멤버들이 반복적으로 녹음한 것을 오버더빙 작업을 해서 거대한 규모의 보컬 하모니를 만들었다. 


싱크로율 100% 


(왼: 지미 말렉, 오: 프레디 머큐리)


지미 말렉은 프레디보다 외소해 보인다. 그러나 실제 키차이는 2cm 밖에 나지 않는다. 프레디가 워낙 다리가 길어서 프레디가 훨씬 크게 느껴지는 것이다. 


(왼 : 브라이언 메이, 오 : 퀼림 리)


마치 브라이언 메이의 젊었을 때 모습을 보는 듯 헤어스타일이며 똑같이 닮았다.


(왼: 로저 테일러, 오: 벤하디)


로저 역을 맡은 벤 하디는 기타는 조금 칠줄 알지만 드럼은 한번도 안쳐봤다. 영화를 위해 드럼을 배우고 직접 로저 테일러를 만나 드럼 레슨을 받았다.


 

(왼 : 존 디콘, 오 : 조 마젤로)


존 디콘을 연기한 조 마젤로는 너무 닮아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1983년에 어디에 있었냐?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물어봤다고 한다. 



영화 



영화 오프닝에 등장하는 20th century fox의 기타와 드럼 연주는 실제 퀸의 멤버인 브라이언과 로저가 연주한 것이다. 



영화 속에서 노래하는 프레디의 목소리는 실제 프레디 머큐리의 목소리와 마크 마텔의 목소리를 사용한 것이다. 마크 마텔은 프레디의 히든 싱어라 할만큼 비슷한 목소리로 매우 유명한 캐나다 가수이다. 



영화의 첫 촬영을 라이브에이드 씬을 찍었다. 



프레디역의 라미 말렉과 메리역의 루시 보인턴은 실제 연인이다. 


마지막에 배신하던 매니저인 폴 프렌터는 프레디가 죽기 3개월 전에 에이즈로 사망한다. 


레이디 가가의 이름은 '라디오 가가'에서 나온 것이다. 



라미 말렉은 프레디의 세세한 동작 하나 하나를 똑같이 하기 위해 안무가와 무브먼트 코치의 도움을 받았다. 



1984년 로저 테일러와 존 디콘이 방한을 했다. 내한공연을 하려고 했지만 대부분이 금지곡이 되면서 불발되었다. 그 후 2014년 8월 14일 슈퍼소닉 주최로 잠실 종합운동장에서 가수 싸이와 브라이언 메이, 로저 테일러가 공연을 하게된다. 그러나 당시 공연장이 텅 빌 만큼 관객수가 적었다. 



프레디 머큐리의 유산 



프레디 머큐리와 메리 오스틴은 1969년에 처음 만났다. 연인이 되어 6년동안 함께 살았고 1973년 크리스마스에 프레디는 메리에게 청혼했다. 메리는 바로 승낙했지만 그 이후로 프레디는 결혼에 대해 얘기하지 않았다. 1976년 프레디는 메리에게 자신이 양성애자라고 커밍아웃을 한다. 그 이후로 둘은 친구보다는 좀 더 가깝지만 연인은 아닌 관계가 된다. 프레디에게 동성 애인이 생겨도 항상 메리는 곁에 있었다. 

프레디는 어떤 동성 애인도 메리를 대신할 순 없다며 그녀는 사실상 아내였고 우린 결혼했던 거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프레디는 1991년 죽으면서 유언으로 그가 살았던 영국 런덕의 저택 '가든 로지'(현재 시가 294억원)와 자신의 재산의 절반(91년 당시 약 1,000만 파운드)과 함께 퀸 음악의 저작권까지 주었다. 자신의 재산이나 음악을 팔아먹지 않고 지켜줄 사람이 메리가 유일했던 것 같다. 

그는 퀸의 광팬들에 의해 시체가 훼손될 것을 우려하여 메리에게 자신을 화장해서 묻은 장소를 비밀로 해달라고 했고 아직까지 프레디가 어디에 묻혀있는지는 메리만 알고있다. 프레디의 유골을 뿌린 곳을 그의 부모님에게도 안 알려주었다. 메리는 상속으로 영국에서 손꼽히는 갑부가 되었다. 프레디는 유언으로 이 저택에 짐 허튼을 같이 살게해달라고 했으나 그가 죽은 뒤 메리는 짐 허튼을 쫓아냈다. 

부모님과 여동생에게는 재산의 각 25%를 주었다. 



영화와 달리 짐 허튼은 게이클럽에서 만났고 그 클럽이 있던 호텔의 이발사였다. 

죽을때까지 곁을 지켰던 동성 애인인 짐 허튼에게는 50만 파운드를 줬다. 비서와 요리사에게도 각각 50만 파운드를 준 걸 보면 짐 허튼이 진정한 사랑은 아니었던 것 같다. 프레디가 죽고 짐 허튼은 프레디에 대한 책을 쓰고 사생활을 폭로한다. 

프레디는 죽기 직전에 "당신이 내 아내였다면 이 것은 모두 당신의 것이었을 거다"라고 말했다. 그의 진정한 "Love of my life"는 메리였던 것 같다. 

메리는 여전히 가든 로지에 살고 있으며 프레디에 대한 어떤 공식적인 인터뷰를 하지 않은채 신의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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