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시성 전투는 645년 고구려와 당나라가 3개월 동안 싸운 전쟁이다. 당나라와 어떻게 싸웠는지 전투의 큰 흐름은 영화속의 내용과 같다. 



645년 당나라의 군대가 안시성 공격을 시작한다. 큰 돌을 날려보내는 투석기인 포거와 성벽을 파괴하는 돌격용 수레인 충거 등 신무기들을 동원해 공격했지만 안시성은 끄덕도 하지 않았다. 야밤에 기습공격을 했지만 저항이 완강하자 당나라는 60일동안 50만명을 동원하여 안시성보다 높게 토산을 쌓았다. 그러나 토산이 무너지고 안시성의 군사들이 토산을 탈취하였다. 당태종은 토산이 무너지자 부복애의 목을 베어버렸고 3일동안 밤낮으로 토산 쟁탈전을 벌였으나 실패했다. 당나라는 88일간의 전투를 끝으로 퇴각했다. 



안시성주의 이름은 양만춘이 맞을까? 



양만춘이라는 이름은 16세기 명나라의 소설 '당서지전통속연의'에서 나온다. 소설에서 나온 이름이기에 이 이름이 진짜인지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 양만춘의 형제관계와 생년월일도 불명확하고 안시성 전투를 제외한 모든 것이 밝혀진 바가 없다. 1,000년이 지난 후 조선 후기에 송준길의 '동춘당선생별집'과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안시성 성주가 양만춘으로 나온다. 그러나 아직도 양만춘이 맞는가에 대해 논쟁이 있다. 


고분벽화에 기록된 개마무사 



고구려의 고분벽화에는 개마무사의 모습이 나와있다. 개마무사는 영화에서 연개소문이 이끄는 군대처럼 철장갑으로 무장한 말을 탄 무사들이다. 말과 사람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강철을 가죽으로 이어붙인 찰갑을 입었다. 말갑옷과 무기를 포함하면 그 무게가 자그만치 70kg이었다. 말이 과연 버틸 수 있었을까? 


개마무사의 주무기는 창이다. 



개마무사의 주무기는 칼이 아닌 창이었다. 중국의 창은 보통 4미터 정도인데 고구려군의 창은 5미터가 넘고 강철로 만들어 무게는 6~9kg 이었다. 



투구는 어디갔지?



영화에서는 주연 배우의 얼굴이 잘 보여야하니 모두 투구를 쓰지 않고 싸운다. 그러나 실제 전투에서는 모두 투구를 썼고 갑옷도 영화 속 갑옷과 다른 비늘 갑옷이었다. 

영화 속에서 나온 갑옷은 중국풍이 가미된 국적 불문의 형태이다. 벽화 속에서 볼 수 있는 고구려군은 주로 비늘 모양의 찰갑 형태의 갑옷을 입었다. 



이 논란에 대해 김광식 감독은 안시성에는 개마무사가 없고 도끼부대, 칼부대, 기마대 등은 빠른 속도를 위해 투구를 쓰지 않고 갑옷도 입지않는다고 말했다. 


연개소문과 양문춘은 실제로 사이가 안좋았나? 


삼국사기 고구려 편에는 642년 연개소문이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양만춘은 지지 선언을 하지 않았다고 나와있다. 그러나 전쟁 중에는 내부의 갈등은 덮고 서로 협력했다. 영화에서 첫장면으로 주필산 전투가 나온다. 연개소문이 양만춘에게 군사 파견을 요청했지만 양만춘이 군사를 보내지 않아 패배했다고 나온다. 하지만 실제 역사는 다르다. 신채호의 조선상고사에 따르면 연개소문이 양만춘에게 출전하지 말고 안시성을 지키라고 지시한 것이다. 

 

안시성이 무너지면 바로 평양성이 아니라 오골성이 있다. 



영화에서는 극적 긴장감을 위해 안시성이 함락되면 그 다음 타자는 바로 평양성이 위태해진다고 나온다. 그러나 당나라 군대가 개모성, 요동성, 백암성, 비사성 등을 차례로 무너뜨리고 안시성과 평양성 사이엔 오골성이 있었다. 



영화 속 백하부대 같은 여군 부대가 있었을까? 



우리나라 역사에는 기록이 없지만 중국의 비석에는 연개소문의 여동생 연수영의 존재가 나온다. 고구려는 조선과 달리 영성의 사회적 지위가 남성과 동등했기 때문에 상상력을 발휘하여 영화적 픽션으로 여군부대를 설정하였다. 


고구려군이 땅굴을 파서 토산을 무너뜨렸을까? 


안시성 전투에 대한 기록 중에서 토산이 무너졌다는 기록은 있지만 어떻게 무너진 건지 왜 무너진건지에 대한 기록은 없다. 고구려군이 땅굴을 파서 토산을 무너뜨렸다는 것은 영화적 상상이다. 


당태종은 눈에 화살을 맞았을까? 



역사의 기록은 승리한 자들에 의해 기록된다. 중국의 문헌에는 전쟁으로 인한 고구려의 피해만 강조되어 나온다. 양만춘이 쏜 화살에 당태종이 부상을 입은 것은 고려 후기의 문헌에 기록되어 있다. 이곡이 쓴 '가정집'과 이색이 쓴 '목은시고'에 양만춘이 쏜 화살에 이세민의 한쪽 눈을 잃었다고 나온다. 그러나 이를 역사적 사실이라고 보기에는 근거가 미약하다. 



이세민이 당나라로 돌아간 진짜 이유는 날씨와 보급 문제였다. 


영화에서는 당태종이 눈에 화살을 맞고 연개소문이 군사를 이끌고 안시성으로 오자 급히 철수한다. 그러나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에 따르면 날씨가 점점 쌀쌀해지고 오랜 전투로 군량미가 부족한 것이 결정적인 이유였다. 


실제는 아름다운 결말이다. 



영화에서는 당나라 군이 고구려군의 공격을 받으며 정신없이 도망치고 고구려군은 끝까지 쫓아간다. 그러나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에서는 양만춘은 당나라군에게 잘가라고 인사를 했고 이세민은 잘 싸웠다며 비단 100필을 보내 해피엔딩으로 끝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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