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2016년 2월 27일 ~ 2016년 3월 2일 

여행지 : 베트남 다낭, 후에, 호이안 

여행사 : 여행박사 패키지 

인원 : 혼자 


※ 오늘의 일정 

바나산 국립공원 (옵션 $60)

점심식사

후에 카이딘 왕릉 및 투덕왕릉

후에 미안 유황 온천

저녁식사 

후에 센트리 호텔 숙박




바나산 국립공원에서 후에까지는 차로 3시간이나 걸린다. 도로에 차가 많지도 않고 텅텅 비어있는데 시속 50~60km로 아주 천천히 달렸다. 도로에 차도 다니고 자전거도 다니고 오토바이도 다니고 심지어 개도 다니는데 누구도 서두르지 않는다. 앞에 자전거가 가로막고 있어도 빵빵 거리지 않고 자전거도 슬로우모션하듯 아주 느긋하게 비켜준다. 

이렇게 공생하며 사는건가. 베트남의 운전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너무 느리게 가서 속이 터지기도 했지만... 

여행 내내 이 속도로 가니 가이드가 일어서서 설명을 해도 전혀 위험할 일이 없다. 가이드는 한국에 가면 버스나 택시나 너무 빠르고 급정거도 잘해서 생명의 위협이 느껴질 정도라고 한다. 이렇게 느긋하게 사는 것도 좋을 듯하다. 



후에로 가는 길에 식당에 들려 점심식사를 했다. 2년이나 지나서 기억이 가물가물해도 한가지 확실한건 베트남 다낭 패키지의 모든 식사가 최악이었다는 것이다. 사진찍기도 싫을 만큼. 맛이 없다. ㅠ.ㅠ 



 식당 뒷편에는 공연장이 있는데 지금은 공연을 하지 않는 것 같다. 저 뒷편에 바다 똥물인거 보이쥬? 2월, 3월 여행을 다니며 다낭, 후에, 호이안에서 파~란 바다를 한번도 본적이 없다. 




드디어 카이딘(Khai Dinh) 왕릉에 도착했다. 후에 관광지 안에는 외국인 가이드는 입장할 수 없다. 불시에 공안이 단속을 하고 있어서 현지인 가이드와 함께 입장해야했다. 



후에는 17세기 말 경에는 동남아 해상 무역의 중심지로 이름을 떨쳤으며 1802년에서 1945년에 이르기까지 약 150여년 간 베트남의 마지막 봉건 왕조였던 응우옌 왕조의 수도가 있었던 곳이다. 1993년 베트남 최초로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후에 왕궁이 있어 역사와 문화를 탐방할 수 있는 곳이다.



왕릉 입구에 서면 가장 먼저 유럽 고딕 양식이 시선을 압도한다. 이 계단은 모두 36개로 난간 사이에 용이 새겨져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이 곳은 문무관이다. 카이딘 황제는 1920년부터 11년에 걸쳐 가장 화려한 무덤을 만들었다. 퇴임 후까지 이어진 대사역이었다. 그래서 카이딘 황릉의 공덕비 뒷면에는 한때 비난 낙서와 욕설이 가득했다. 투득 황제가 불임이었던 것 처럼 카이딘 황제가 게이라는 소문도 있다. 



카이딘 왕릉은 20세기 초 베트남 건축 예술을 대표하는 곳으로 베트남과 유럽 고딕 양식이 혼재되어있다. 




36계단을 올라 중앙에 이르면 공덕비와 무덤을 지키는 문무관, 기마, 코끼리 석상이 세워져 묘를 지키고 있다. 




카이딘 왕릉의 입구는 유럽 고딕양식의 건축풍으로 되어있다. 후에의 왕릉 중에서 가장 화려한 것은 12대 황제인 카이딘 황릉이다. 금박과 도자기, 유리 모자이크로 치장된 건물과 튀어나올 것 같이 거무스름한 계단의 검은 용 조각이 압권이다. 



후에라는 명칭은 지역 명칭인 투안 호아(Thuan Hoa)에서 "Hoa"를 프랑스인이 "후에"로 잘못 발음하면서 유래되었다. 





덕분에 이곳은 좋은 포토존이다. 이리 찍고 저리 찍어도 다 이쁘게 나온다. 



왕릉의 외부보다 내부가 더 화려하다. 아주 온통 금칠로 번쩍번쩍하다. 



내부 벽과 천장은 도자기와 유리로 모자이크 장식을 해 두어 서양 건물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그 중에서 가장 화려한 곳은 카이딘의 묘이다. 묘 뒤에는 황제의 위업을 기리는 2층짜리 팔각형의 작은 석상이 있다. 내부의 옥좌에는 청동에 금박을 입힌 카이딘왕의 등신상이 있다. 이 황제상의 무게만 1톤 정도 된다. 왕의 시신은 등신상 아래 18m 지하에 안치되어 있다. 




왕릉 내부를 구경하고 밖으로 나왔는데 어디서 왔는지 길고양이가 다리에 붙어 애교를 떨고있다. 어쩌지? 지금 먹을게 없는데 ㅠ.ㅠ  아무리 가방을 뒤져도 먹을게 없다. 미안해 냥이야 줄게없어..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 본 모습. 이제 또 다른 왕인 투덕 황제의 릉으로 간다. 

 



투득 황제(Tu Duk)는 최초로 베트남을 통일하고 칭제 건월을 한 응우옌 조의 4번째 황제이다황제의 키는 153cm로 자기보다 큰 사람은 절대 등용하지 않았다고 한다과연 뽑을 사람이 있었을까 싶지만 그렇게 1848년부터 1883년까지 재위했다. 이는 13명의 황제 중 가장 재위 기간이 긴 기간이다. 황제는 후궁을 103명이나 뒀으나 전립선에 문제가 있어 정작 후손은 한명도 없었다.



앞에서 본 카이든 왕릉과는 확연하게 다른 분위기이다. 연못 주위로 꽃을 많이 심고 잘 가꾸어진 정원 느낌이었다. 

이 호수는 인공호수로 루키엠 호수이다. 



투덕 황릉은 시내에서 7km 정도 떨어진 반 니엔산에 있다. 응우옌 조가 수도로 삼은 후에의 궁과 능들은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돌벽으로 에워싸여 소나무 숲 안에 자리잡고 있는 투덕황제의 왕릉은 구엔 완조의 유적 중 가장 잘 보존 된 것 중에 하나이다. 225헥타르에 펼쳐있고, 50개의 건축물로 구성되어 있어, 무덤이라기보다는 대규모 공동묘지라는 표현이 어울릴 것이다. 호수주변의 부속건물은 나무목재기둥으로 만들어진 중국양식의 단아한 모습의 건물이다.



연못의 조경과 왕릉내의 산책로가 잘되어 있어서 산책을 즐기면서 돌아보는 즐거움이 있다. 왕릉입구에는 사원이 있고 왕의 무덤은 안쪽에 자리잡고 있다. 규모도 규모지만 여유롭게 걸으면서 돌아보기 좋은 곳이다.



투득 황릉을 만드는 데 4년이 걸렸고 3,000여 명의 군사를 동원했다. 공적을 새길 20t짜리 비석돌은 50 떨어진 곳에서 운반해 왔다. 투득 황릉은 무덤이 아니라 별장에 가깝다. 



연못엔 정자가 3개 있는데 하나는 낚시를 즐기기 위해다른 하나는 황비·후궁들과 시를 짓기 위해셋째 정자는 제비들을 노닐게 하느라 지었다그러나 정작 그의 시신은 어디쯤 묻혔는지 미스터리다수백 명을 동원해 능 한쪽에 비밀 묘를 만들게 한 뒤 만든 이들을 몰살했다고 전해진다.



별궁 앞에 있는 호수에는 정자가 있다. 이 정자에서 투득 황제가 시도 읊고 루키엠 호수에서 낚시도 했다고 한다. 





이 곳은 별궁 건물로 지금은 투득 황제와 그의 부모님을 모신 사당이다. 



"후에는 가도 후회, 안가도 후회"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 경주에 비하면 유적지가 작다. 다낭, 후에, 호이안이 가까이 붙어 있기 때문에 패키지는 3도시 세트가 기본이다. 평소 유적지와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은 가볼만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자유여행으로 간다면 꼭 후에를 갈 필요는 없다. 



투득 왕릉을 관람하는 동안 현지인 가이드가 내내 핸드폰 통화를 하고 있었다. 대화가 안통해서 우리에게 유적지 설명은 못 해주지만 그래도 몇십분동안 계속 통화를 하고 있으니 서비스 정신이 없다는 둥 사람들이 투덜투덜 거렸다. 

나중에 알고보니 한국인 가이드와 통화를 한 것이었다. 원래 오늘 일정이 후에 성, 오무, 외성, 태화전, 열사당, 조묘 등 후에의 모든 문화유적지를 관광하는 것인데 공안이 갑자기 단속을 나오는 바람에 입장이 늦어져서 남은 유적지는 내일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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