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남녀 차별이 당연시되던 시대에 태어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는 하버드 로스쿨에서 전체 학생의 단 2%에 해당하는 9명의 여학생 중 한명이다.

 

 

그녀는 두 아이를 키우며 로스쿨 2학년인 남편 마티와 함께 로스쿨에 다니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고환암에 걸려 입원한다. 마티는 다행히 완치되었다. 

 

 

 

1959년 

 

 

남편 마티는 변호사로 잘나가지만 그녀는 하버드 로스쿨을 수석 졸업했어도 변호사로 취직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로펌대신 럿스거대 교수로 취직한다.

 

1970년 

 루스는 대학에서 성차별과 법을 가르치고있다. 현재 성별에 의한 차별은 합법이다. 

 

 

남편 마티는 한 사건을 루스에게 건내준다. 찰스 모리츠는 미혼 남성으로 홀로 어머니를 돌보고있다. 그는 간병인의 보수 296달러를 세금 공제 신청했지만 남자란 이유로 거부당했다. 법원은 보육비 공제 신청은 여성만 가능하고 남자는 아내가 중증 장애인이거나 사별 또는 이혼해야 한다고 거부했다. 조세법에는 가족 보육자의 자격을 여성으로 지정하고있다. 이건 남성의 역차별 사건이다. 

 

 

이 법 조항을 위헌으로 판결하면 수많은 재판의 판례로 인용되어 성차별 조항을 없앨 수 있다. 

그녀는 모리츠를 만나 무료변호를 해주기로 한다.

 

 

그녀는 딸 제인과 함께 여성 인권을 위해 싸운 변호사 도로시 케년을 만난다. 도로시는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며 도와주지 않는다.

 

 

나중에 루스가 작성한 변론 취지서를 읽어보고는 시민자유연맹의 멜 울프에게 그녀를 도와주라고 한다. 그래서 변론 취지서에 시민 자유연맹도 명단을 올린다. 

루스의 변론 취지서를 받은 법무부 세무과는 남녀 차별이 담긴 연방법 178개를 나열한 답변서를 보낸다. 

 

 

루스의 집에서 재판을 대비해 모의 재판을 연다. 그녀가 제대로 변론하지 못하자 남편 마티가 먼저 세금에 관한 변론을 하고 루스가 성차별에 관한 변론을 하기로 한다. 

 

 

멜 울프는 패소할 게 뻔하다며 합의금을 받고 끝내게 모리츠를 설득하라고 한다. 그러나 루스는 끝까지 항소하기로 한다. 

 

 

찰스 모리츠 대 국세청장의 항소재판이 시작된다. 남자는 밖에 나가서 돈을 벌고 여자는 집에 있는게 자연의 섭리라는 주장이 팽배하다. 거의 망한 분위기. 이제 변론할 수 있는 기회는 4분 뿐이다. 루스의 변론이 시작된다. 

100년 전에는 여자는 변호사가 될 수 없었고 자신이 이 자리에 있지도 못했을 것이다. 

"조세법 214조의 목적은 여성 보호나 남성 차별이 아니라 보육자의 사회 활동을 지원하는 것이다. 입법 취지에 부합하도록 법을 수정해야한다. 우리의 자녀들이 법에 가로막혀 편견에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 판사님들은 그 출발점을 세울 힘이 있다. 이 잘못을 바로 잡아야한다. "

 

 

제10 항소법원은 조세법원의 판결을 파기하고 모리츠의 보육자 공제 자격을 인정했다. 모리츠 대 국세청장, 리드 대 리드 사건은 성별에 의한 차별이 위헌임을 최초로 공표한 재판이 되었다. 

 

 

루스는 시민자유연맹의 여성권 프로젝트를 공동 설립했으며 그의 세대에서 선구적인 젠더인권 변호사가 되어 연방대법원에서 역사에 남을 여러 재판에서 승소했다. 

 

 

마티는 미국에서 손꼽히는 세금 변호사가 되었고 조지타운대학 법학센터의 인기 교수가 되었다. 그는 2010년 결혼 56주년을 보내고 며칠 후 암으로 사망했다.

루스의 딸 제인은 1980년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하고 현재 컬럼비아대에서 법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아들 제임스는 클래식 음악을 제작하고 있으며 세디유 레코드를 설립했다. 

 

 

1993년 6월 14일 루스는 연방대법관 후보로 올라 96대 3으로 연방대법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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