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머징 마켓

 

한 때 사람들은 이머징 마켓을 위험 부담이 큰 시장으로 인식했다. 이머징 마켓이란 급성장하는 아시아 국가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신흥 시장을 말한다. 최근에는 위기를 딪고 다시 떠오른 다는 의미로 리이머징 마켓이 주목받는다. 

가장 주목받는 리이머징 마켓은 중국이다. 

 

 

금융세계화

 

1832년 영국 선장인 윌리엄 자딘과 제임스 매디슨은 중국 남부 광저우항에 무역 회사를 세우고 아편과 마약을 팔았다. 중국에서는 아편이 금지되어 있었다. 1839년 중국 관료가 아편 무역을 원천 봉쇄하고 아편을 모두 바다에 버린다. 막대한 피해를 본 선장은 영국에 파병을 요청한다.

1840년 홍콩에 영국 군함이 온다. 영국 해군은 쉽게 중국의 해군을 무너뜨린다. 

중국 남서부는 아편 시장이 개방되고 중독자가 늘어나고 폭동이 일어난다. 중국은 무정부 상태에 빠졌다. 자딘매디슨 사는 사업을 확장한다. 

최초의 금융세계화는 세계 1차 대전때문에 막을 내렸다. 

 

 

세계 경제의 주축이 무역에서 금융으로 넘어간다. 

1914년 오스트리아 제국의 후계자가 암살된다. 이 사건은 세계 금융 시장에 엄청난 파국 효과를 가져온다. 금융 위기와 함게 금융 세계화도 사라지게 된다. 그러나 전쟁 직전까지 투자자들은 금융 시장의 붕괴를 몰랐다. 전쟁 직전까지 금융 시장은 청신호였기 때문이다. 

한 세대에 걸쳐 구축된 안정된 체계라고 해도 단 몇일 만에 붕괴될 수 있다. 

 

IMF, 세계은행

 

1944년 승전을 앞둔 연합국은 새로운 금융 제도를 만든다. 무역은 자유화하고 국가간 자금 이동은 반드시 정부를 통하도록 했다. 이 때 IMF 국제통화기금과 국제부흥개발은행(세계은행)이 탄생한다. 이로써 금융 세계화가 다시 시작된다. 

 

 

1970년대 중동 산유국들이 엄청난 돈을 벌어들인다. 서부은행들은 이 돈을 유치해서 대출에 재투자하자 국제기구들은 규제를 완화했다. 이로써 금융세계화가 다시 열렸다. 

1982년 멕시코 정부는 대외채무를 갚을 수 없다고 선언했다. 남미 지역은 막대한 돈을 빌리고 얼마 후 남미 대륙 전체가 파산 위기에 몰린다. IMF와 세계은행이 이런 문제를 맡는다. 대출을 해주는 대신 구조조정 정책으로 긴축 재정을 구축하라고 압박했다. 

 

재귀성 이론 

 

 

퀀텀 펀드의 조지 소르스 사장은 인간의 불완전성과 금융시장의 불완전성에 대한 이론으로 유명하다. 소르스는 재귀성 이론에 따르면 금융시장은 완벽하게 효율적이거나 이성적일 수 없다. 시장에서 형성되는 가격은 비이성적인 투자자들의 무지와 편견을 반영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기분이 들떴다가 가라앉는 것처럼 금융 시장은 호황과 불황을 반복한다. 

 

퀀텀 펀드는 공매도로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공매도란 가격 하락을 예측하고 주식을 고가로 매도한 후 가격이 떨어지면 낮은 가격에 재매수해 되갚는 방식이다. 1992년 영국의 파운드화는 유럽환율제도를 통해 독일 마르크화와 연동되어 있었다. 독일이 통일비용 지출로 금리를 인상하자 영국도 금리를 인상해 대출금 이자부담이 가중되었다. 소로스는 영국이 유럽환율제도에서 탈퇴해 파운드를 평가절하할 것을 예측했다. 결국 영국이 유럽환율제도에서 탈퇴하고 파운드화는 폭락했다. 소르스는 이때 엄청난 돈을 벌었다. 

 

 

투자법의 공식 

 

1993년 미국 그린위치의 한 사무실에서 수학 천재 두명이 만났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마이런 숄스와 로버트 머턴이다. 두 사람은 퀀츠, 즉 수리모델의 기초로 한 투자프로그램으로 돈을 버는 투자자들의 원조다. 그들이 고안안 수익모델은 옵션 계약을 기반으로 한다. 

 

공식의 관건은 옵션 가격을 결정하는 방식이다. 주식을 일정 시점에 매입한다고 할 때 일정 기간의 가격 변동을 감안해서 옵션 가격을 산출하는 것이다. 한치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게 정확히 계산해야한다. 그들은 옵션 가격을 산출하는 공식을 완성했다. 

 

롱텀 캐피탈 매니지먼트 

 

머턴과 숄스는 롱텀 캐피탈 매니지먼트를 설립했다. 롱텀 캐피탈은 저평가된 주식을 대량 매수하여 수익률을 올렸다. 1997년 롱텀 캐피탈의 부채는 산더미처럼 늘어난다. 그들의 계산에 따르면 위험은 제로였다. 

옵션이 높은 가격에 거래되자 투자자들의 불안 심리도 높아졌다. 그러나 롱텀 캐피탈은 주식 시장 변동성이 감소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래서 옵션가를 낮추고 대량 매도했다. 

그 이후 두사람은 노벨 경제학상을 받으며 승승장구했다. 

1998년 8월 17일 정치불안, 석유수출대금 감소, 사유화 정책의 실패로 러시아 금융이 붕괴되었다. 러시아 정부는 채무불이행을 선언했고 주가는 폭락했다.

롱텀 캐피탈의 계산이 틀린 것이다. 주식 변동성이 커지자 옵션 거래가 늘고 10일만에 회사의 자산가치는 45%까지 추락했다. 이후 파산신청을 하고 구제 금융으로 회생했다.

그들이 금융 시장의 불완전성과 투자자들의 불안한 군중심리를 간과한 것이 문제였다. 또한 1987년 주식 대폭락 사태를 고려하지 않았다.

 

 

차이메리카 

 

차이메리카는 니알 퍼거슨 교수가 최초로 사용한 용어로 미국과 중국의 경제적 공생 관계를 말한다.

중국의 금융시장은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무역 불균형과 정치 변동이 심화되었는데도 주가는 급등했다. 중국 충칭은 가장 빠른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 중국은 충칭을 금융의 중심으로 건설하려고 한다. 

최근의 중국은 이머징 마켓에 불어닥친 금융위기를 피해갔다. 중국이 금융위기가 없었던 이유는 투자 자금을 해외에서 지원받는 것이 아니라 자국 내 저축에서 조달하고 직접 투자를 했기 때문이다. 

 

 

2007년 미국은 극심한 무역 적자를 기록했다. 8,000억 달러를 세계 각국에서 빌려야 했다. 반면 중국은 미국의 적자보다 25% 이상 많은 무역 흑자를 기록했다. 이렇게 중국이 축적한 자금 대부분을 미국에 빌려주었다. 

중국은 값싼 노동력을 바탕으로 제품을 대량 생산해 미국에 수출했다. 위완화의 환율 강세를 막고자 외환시장에서 수십억 달러를 사들였다. 미국은 중국에 수십억달러의 채권을 판매하여 자금을 확보했고 미국 내 금리를 낮추었다. 미국과 중국은 서로 윈윈하는 경제적 공생관계였다.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일어나자 미국 재무부는 7,000억 달러의 규모에 이르는 금융구제 법안을 내놓았다. 2008년 6월 미국 경제는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중국은 미국의 금융위기로 중국의 대미수출에 차질이 생겼지만 내수가 급증했고 중국은 8% 이상 성장했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공생과 경쟁을 반복하다 대립의 구조로 갈 수 있다. 

 

 

 

블로그 이미지

hongya

,